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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어느 날 뫼르소의 엄마가 죽는다. 뫼르소는 장례식을 치른다. 친구 레몽이 괴롭힌 여자의 오빠 패거리 중 한 명을 뫼르소는 태양이 뜨거워서 죽인다. 재판에서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감상

독후감을 쓴 것이 참으로 오래간만인 탓에 감상을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이방인》이라는 제목에서 시작해볼까. 이방인. 다른 곳에서 와 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자. 뫼르소가 이방인임은 분명해보인다(아니면 뫼르소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방인이거나). 그렇다면 뫼르소는 어떤 사회의 이방인인가. 바로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울어야 하는' 사회다. 하나 이것은 지엽적이다. 뫼르소는 비단 어머니의 장례식 말고도 다른, 아니 모든 곳에서 이방인스러운 면모를 보였다. 일요일 오후 모두가 영화와 운동 경기에 열광하던 때, 그는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회사에서 그는 남들과 달리 야망이 없었다. 감옥에서 그는 아랍인을 죽인 범죄자로서 아랍인들 사이에 껴 생활한다(대놓고 이방인이다). 재판장에서 그는 본인이 피고임에도 불구하고 대화에 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뫼르소는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마저 이방인화한다. 이는 그만의 공간인 '방'에서 드러난다. 그 누구도 뫼르소의 방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으며, 환대를 받지도 않았다. 마리는 관계 후 방을 바로 나갔고, 레몽과 살라마노 영감이 방에 들어와 얘기를 할 때 뫼르소는 누워 있었다(설마 프랑스에서는 손님이 왔을 때 누워 있는 게 예의인가?). 신부는 아예 (독)방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다. 뫼르소에게는 모두가 다만 자기 방에 찾아온 이방인에 불과했다.

이런 이방인됨과 이방인화는 무엇에서 비롯되었나? 물론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의 실존주의적 성향이다. 작중에서 그의 정신 상태는 대체로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피곤하거나, 정욕을 느끼거나, 즐거워한다. 당연한 일이다. 분노와 슬픔 따위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느낄 수 있으므로. 아무것도 중요시하지 않았기에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고 도리어 장례식을 피곤하게 여겼으며, '태양이 뜨거워서'라는 지극히 감정적인(한편으로는 한없이 이방인다운) 이유로 방아쇠를 당겼다. 뫼르소는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의 이방인이다. 사회는 이를 용납할 수 없어 (검사의 말로 대변되는) 비난을 퍼붓고, 사형을 선고하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방인을 말살하기로 한다.

그러나 정작 이방인은 여전히 무덤덤하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다", "죽는 바에야 어떻게 죽든 언제 죽든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명백한 일이다". 이렇게 뫼르소가 평정을 유지하고 있을 때, 신부가 찾아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돕습니다", "나도 당신을 기도로 돕겠습니다"라며 헛소리를 지껄인다. 뫼르소가 계속 내쳐도 신부는 들러붙는다. 그러다 신부가 어깨 위에 손을 올림으로써 이방인이 되는 물리적 경계를 깼을 때, 뫼르소는 폭발한다. 그는 숨도 쉬지 않고 철학, 신념 아니 한 단어로 나타낼 수 없는 무언가를 게워낸다. 이 분노로 내적 이방인됨을 모조리 토해낸 뫼르소는 마침내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사형 집행일에 수많은 구경꾼이 몰려와 외적 이방인됨까지 집어던지게 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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